오랜만에 친구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 전시를 보고 왔어요. 전시가 여러 개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저희는 그중에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와 올해의 작가상 2023을 관람했어요!
현대차 시리즈는 24년 2월 25일 폐막했고, 올해의 작가상은 24년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올해의 작가상 2023 :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국립현대미술관은 2012년부터 올해의 작가상을 위해 매년 4인의 미술 작가를 선정하여 전시를 열고, 수상자를 뽑아요. 보통 중견 작가들을 중심으로 선정되는데, 이번에는 권병준 작가님이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고 하네요.^^
평소에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던 분이라면 이름이 생소한 작가가 많을 것 같아요. 저는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도, 동시대 미술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처음 접한 작가도 꽤 있었어요. 그럼 지금 어떤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권병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권병준 작가의 전시 공간에 설치된 작품들이에요. 기괴한 형태의 쇠붙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기계음을 내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전시실 전체가 어둡고 작품에만 조명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기계가 만드는 거대한 그림자가 전시장의 분위기를 스산하게 만들더라고요. 마치 80~90년대에 21세기를 상상하며 로봇 세계를 표현한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어요. 함께 간 친구는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ㅎㅎ
권병준 작가는 1990년대 음악으로 사회에 발을 디뎠고, 2000년대부터 영화 사운드 트랙, 무용, 연극, 국악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경력을 쌓으셨대요. 현재는 음악, 연극, 미술을 아우르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 연출한다고 해요.
전시 공간에 가면 헤드폰을 끼고 작품을 관람하도록 안내가 되어있어요. 주말에 관람객이 많아서 헤드폰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네요. 헤드폰 소리를 듣지 못해서 작품을 반도 못 본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헤드폰을 꼭 사수하고 싶네요.ㅎㅎ
갈라 파고스-김
올해의 작가상 전시 중에 가장 처음으로 들어간 전시실이었는데요. 전시실에 들어가서 쭈욱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오래된 시간을 겪고 지나온 유물 또는 무형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작가가 작품이라고 놓은 물건들은 진짜가 아니고 작가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유물, 무형의 유산인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 이게 뭐지? 진짜인 건가? 스토리 자체가 가짜 같은데? 싶었다가 점점 작가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달까요...?ㅎㅎ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미간을 찌푸리며 전시를 보다가 사진 한 장을 못 남겼네요...ㅎㅎ
아마도 작품을 보는 관람객에게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있는 유물, 무형의 유산에 대한 개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이강승
4인의 작가 전시실 중에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에요. 이강승 작가는 퀴어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작업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동성애와 관련된 주제를 이야기하거나 다룰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죠.
저는 현대미술에 대한 조금은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론화하여 외면받고 터부시된 문제들을 논의의 장으로 끌고 오는 것은 현대미술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아기자기하면서 예쁘기도 하고, 영상 작품은 영상미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재밌게 관람했어요.
전소정
근 10년간 이런저런 전시를 보면서 그래도 가장 많이 접했던 작가였어요. 주변에 전소정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도 꽤 있었는데, 사실 저는 이분의 작품은 어려워서 여전히 잘 모르겠... 더라고요. 여타 여러 예술상을 휩쓸고 있는 작가분이에요.
그동안 봤던 전시실에 쓰인 글들이 어느 하나 쉽게 이해가 가는 게 없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작품 하나를 진득하게 앉아서 다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하하하.
작품을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이라기보다는 건축, 문학, 음악 등의 다양한 분야의 협업자들과 함께 어떤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내는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지난주에 폐막한 정연두 작가의 전시도 함께 보고 왔는데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설치물이 곳곳에 놓여 있는 전시였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의 많은 전시실을 관통하는 공간에 백년초와 식물 모양을 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재미있는 공간이었어요!
정연두 작가의 작품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재로 자주 등장해요. 이번 전시는 제주도에 자리 잡은 '백년초'가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20세기 초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요.
5 전시실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작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제주도에서 발견된 백년초는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와 제주도에 뿌리내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동 설화가 있나 봐요.
전라남도에 살고 계신 저희 외할머니 댁에도 백년초가 피어있는 선인장이 있었는데, 이렇게 전시장에서 백년초 이야기를 만나니 친밀도가 굉장히 올라가더라고요. 흥미진진ㅎㅎ
어려운 주제로 느껴지는 이주민들의 삶을 백년초가 이동해 온 경로와 교차시키면서 좀 더 친근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전시에요. 결국 백년초는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의 삶에 다가가게끔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거죠.
저희는 아래 사진 속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주민의 이야기를 판소리(한국), 기다유/분라쿠(일본), 마리아치(멕시코)의 각각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영상 작품이 재밌더라고요. 한국의 판소리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일본의 기다유는 제3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고, 마리아치는 음악이 흥이 났어요...ㅎㅎㅎ
무관심하거나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업하여 많은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공간인 것 같았어요.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서 작품을 여유 있게 보고 싶은 분들은 평일을 이용하시길 추천드려요.
그렇게 마지막 공간으로 오면 설탕으로 만들어진 사탕수수를 베는 농사 기구(마테체)를 표현한 작품이 등장해요. 이 작품은 전시의 주제인 디아스포라(diaspora,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의 어원적 원류인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을 착안한 거라고 하네요.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를 봤더니 머리가 지끈했지만, 늘 다양한 고민을 풀어내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기분 전환을 한껏 하고 왔네요. 올해의 작가상은 3월 말까지 전시를 이어간다고 하니, 문화 생활하러 다녀오세요!
입장료 : 개별 전시 2,000원, 통합권 5,000원
운영 시간 : 월, 화, 목, 금, 일 오전 10:00 ~ 오후 6:00 / 수, 토 오전 10:00 ~ 오후 9:00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 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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